영월 엄씨(寧越嚴氏)에 대(對)하여
1. 시조 : 엄임의(嚴林義)
2. 유래
영월 엄씨(寧越嚴氏)의 시조(始祖) 엄임의(嚴林義)는 한(漢)나라 시인(詩人) 부양(富陽 : 一名 嚴子陵先生)의 후예이며 당(唐)나라 상국(相國) 화음(華陰)의 일족(一族)이다
문호(門戶)가 열리게 된 영월 엄씨는 시조의 아들 3형제 대(代)에 와서 장남 태인(太仁)이 고향을 지키며 군기공파(軍器公派)를 이루었고, 차남 덕인(德仁)은 한양(漢陽)으로 이주(移住)하여 복야공파조(僕야公派祖)가 되었으며, 3난 처인(處仁)은 함경도(咸鏡道)로 이주하여 문과공파조(文科公派祖)가 되어 현재 그의 후손들이 북한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대(代)를 거듭 하면서 참봉공계(參奉公系)·교수공계(敎授公系) 등 37계통으로 갈라져서 가문의 중흥을 이루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여 특히 충절(忠節)의 가문(家門)으로 일컬어졌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11세손 유온(有溫 : 장군 비의 증손, 준의 아들)이 조선 창업(創業)의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총제(同知總制)를 역임했고, 판관(判官) 한저(漢著)의 아들 흥도(興道)가 절행(節行)으로 뛰어났다.
영조(英祖) 때 와서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추증, 순조(純祖)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가자(加資) 되었으며 시호(諡號)가 충의(忠毅)로 내려져, 사육신(死六臣)과 더불어 영월 창절사(彰節祠)와 공주(公州)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배향(配享) 되었다.
한편 시조의 16세손 흔(昕)은 중종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검열(檢閱)과 정자(正字)를 지냈고 호당(湖當)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수찬(修撰)과 이조 좌랑(吏曹佐郞)을 거쳐 세자시 강원(世子侍講院)의 보덕(輔德)을 지냈다.
특히 그는「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에 그 행적(行蹟)이 등재(登載)되어 영월 엄씨를 더욱 빛냈으며, <선(善)으로 패(敗)한 일 보며 악(惡)으로 이긴 일 본가, 이 두 즈음에 취사(取捨) 아니 명백(明白)한가, 평생(平生)에 악된 일 아니하면 자연유성(自然有成)하리라>라는 시조(時調) 한 수가「가곡원류(歌曲源流)」에 전한다.
흔(昕)의 현손 집(緝 : 성구의 아들)은 숙종(肅宗) 때 정언(正言)과 부교리(副校理)를 거쳐 도승지(都承旨)와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낸 후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고, 장희빈(張禧嬪)의 처벌을 주장했으며, 청렴결백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그 밖의 인물로는 광해군(光海君) 때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지냈으며 폐모론(廢母論)에 유생(儒生)을 이끌고 반대하는 상소(上疏)를 올렸다가 파직 당한 성(惺)과, 효종(孝宗) 때 영흥 부사(永興府使)로 나갔던 황(愰)이 유명했고, 성의 조카 정구(鼎耉)는 효종(孝宗) 때 좌승지(左承旨)로 김자점(金自點)의 옥사에 연루 되었으나 무고함이 밝혀져 뒤에 교리(校理)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냈다.
한석봉(韓石峯) 이후의 명필로 이름났던 한명(漢明)은 고금의 서법(書法)을 집대성한「집고첩(集古帖)」과「만향제시초(晩香薺詩抄)」 등의 명저(名著)를 남겨 엄문(嚴門)을 대표했으며, 집(緝)의 아들 경수(慶遂)는 숙종(肅宗) 때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하여,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갔다 와서「연행록(燕行錄)」을 간행한 숙(璹), 순조 때 암행어사를 지낸 도(燾), 고종 때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석정(錫鼎) 등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세영(世永)은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신내각이 수립될 때 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을 역임하여,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한 후 군자금(軍資金)을 모아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정섭(正燮)과 더불어 충절(忠節)의 전통 가문인 영월 엄씨(寧越嚴氏)를 더욱 빛냈다.
3. 영월엄씨 집성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능리
강원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쌍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4. 항렬표(行列表)
世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항렬표 | 석 (錫) | 영 (永) | 주 (柱) | 섭현 (燮炫) | 재익기 (在翼基) | 용호 (鎔鎬) | 태 (泰) | 식상 (植相) | 희 (熙) | 배 (培) |
世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항렬표 | 선 (善) | 수 (洙) | 병동 (炳東) | 묵훈 (默勳) | 규 (奎) | 현석 (鉉旿) | 락 (洛) | 표 (杓) | 환 (煥) | 준 (埈) | 일 (鎰) |
5. 영월 엄씨 인구수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월 엄씨는 2000년 현재 124,697명이 살고 있다.
전체인구의 0.3%로 총 249개 성씨중 제 49 위)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인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105&docId=101880140&qb=7JeE7JSoIOyihey5nO2aj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DrhO35Y7vKsstsycyCssc--443127&sid=TlrV@@jKWk4AABAtD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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