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patent agent과 한국의 변리사 제도의 비교를 통해 본 소송대리의 논리.
작성: Jin Hoon Lee 2011년 8월 3일 수요일 오후 2:10
나는 한국에서 변리사가 되고자 했던 자이다. "되고자 했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결국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면서 Legal field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미국 변리사(Patent Agent) 시험(원 명칭은 USPTO registration examination, 다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중요하다)을 준비하다 보니, 한국에서 최근 이슈가 되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은) 변리사의 소송대리 논쟁과 관련해 짚어보고 싶은 점이 있어 이를 정리해보려 한다. 변호사를 목표로 하지만 필자가 글솜씨가 없는 점을 감안해서 가급적 본문의 내용을 곡해하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먼저 미국의 Patent Agent 제도를 굳이 끌어들여 한국의 변리사 제도와 비교하고자 함은 미국 제도가 우월하다는 사대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이는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교함으로서 한국의 제도에 좀더 객관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고, 변리사의 소송대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걸고 넘어지는 로스쿨 제도가 영미권의 제도임을 감안했을 때 미국의 시스템과의 관계에서 변리사의 제도 및 위치가 보이는 철학을 비교하는 것이 아무래도 설득력이 강할 것이라는 것이 두번째이다. 만약 사실과 다른 내용이 본문에 있다면 누구라도 수정을 가해주시기 바란다.
먼저 미국의 Patent Agent (이하 PA) 제도에 대해서 개괄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의 registered patent agent는 USPTO registration examination을 통과한 자로서, 이는 "미국 특허청과 관계에서 client를 대리할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근본 철학이므로, 기본적인 지위 및 업무는 이에 따라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PA는 특허 출원을 대리할 자격을 가진다. 또한 그 업무의 범위를 엄격하게 특허 관련 업무에 제한시키며 이에따라 USPTO는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특정 이공계 관련 전공자 또는 이에 상응하는 교육을 거친자에만 한하며 시험 과목 또한 특허 관련 지식, 정확하게는 특허출원과 관련한 MPEP (Manual of Patent Examining Procedure, 미 특허심사 절차 매뉴얼)의 내용에 한한다. 그러나 미국 PA는 소송대리권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소송대리권은 "미국 법원을 상대로 client를 대리할 자격"이기 때문에 변리사의 업무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식으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넘어가도록 하겠다. 합격률이 50%에 육박하는 본 시험이 미국의 3대 어려운 시험으로 꼽히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사안이 작용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변호사도 마찬가지로써,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딴 변호사라도 변리사의 업무, 즉 특허청을 상대로 client를 대리할 수 없다. 물론 변호사 자격(이는 주마다 주어지는 것이 원칙이다)을 얻은 자가 PA 자격도 취득하는 경우 USPTO에 registered patent attorney로 등록이 되며 출원 및 소송대리 업무가 모두 인정된다. 하지만 이는 patent attorney가 두 자격을 모두 취득했기 때문이지 변호사로서 등록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와 비교할 때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변리사 제도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인다. 우선 시험 과목을 살펴봤을 때, 한국에서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essay 과목으로 민사소송법 및 전공과목을 요구한다. 이는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실과는 달리,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소송대리 101을 알아야 하고 이에 덧붙여 심사관 수준의 전공 지식을 기본소양으로 가져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변리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심사관으로 임명되어 한국 특허청에서 일하는 상황을 봤을 때 전공과목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시험제도는 기준의 차이라고 넘어갈 수 있더라도, 실제 업무에서 인정하지도않을 민사소송의 지식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하려 해도 이는 단순히 응시생을 떨어뜨리기 위한 방책에 불과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반대하는 자는 한국의 변리사 제도가 변리사의 자격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응시생을 괴롭히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변호사가 되면 변리사 자격을 자동 취득할 수 있는 시스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사소송을 시험과목으로 본 변리사는 소송대리가 인정되지 않는데, 선택과목으로 특허법을 선택하지 않은 변호사가 특허법을 전문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형평성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곧 미국 PA 자격을 취득하고 2년뒤 미국 변호사를 취득할 전기전공자인 본인으로서도 현업에 돌입하면 client의 발명을 과연 100%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공포심이 깔려있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전공지식이 없는 변호사들이 과연 특허관련 소송에서 제대로된 case building은 커녕, 출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한국의 특허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해가 가능한 간단한 기술 뿐이거나,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너무나 훌륭해 비전공자에게도 본인의 "특허"기술을 이해시킬 정도이거나, 아니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고등학교 부터 이공계관련 지식을 쌓지 않아도 단숨에 그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자이거나, 이 셋 중 하나의 경우일 것이다. (세 시나리오 모두 현실성이 없어보이는건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것으로 '기대'한다)
변리사의 특허소송 관련 소송대리가 변리사법에 명시된 업무범위라는 점은 굳이 짚지 않도록 하겠다. 워낙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한 변호사 협회가 워낙 완고하게 못본척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논지에 굳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끝으로 소송 대리에 필요한 능력이 과연 무엇인지, 그 근본을 한번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과연 민사소송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항소를 할 수 있는 기간이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짜로 부터 며칠인지, 인지를 얼마를 내야하는지와 같은 절차적 지식인가? 한국의 현업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미국에서는 이런 절차적 문제는 수십년 현역에서 일해온 paralegal이 더 잘 알고 오히려 변호사에게 충고를 해주는 상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르긴 해도 한국에서도 사무관으로서 잔뼈가 굵으신 분은 어떤 판사마다 어떤 문서 형식을 선호하는지까지 파악하고 계실 것이다.
내가 로스쿨을 다니면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했을 때 변호사에게 중요한 능력은 fact를 어떻게 보여서 case를 어떻게 building할 것인가이다. 법을 이해하고 판례를 해석해서, 본 case의 사실관계를 그 해석에 비교 분석하여 어떻게 case를 present했을 때, reasonable한 사람의 기준에 내 client의 이야기가 진실로 인정받을 수 있고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변호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특허법에 대한 이해도 공인받지 않고, 특허에 대한 사실관계를 이해할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단독적으로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과연 밥그릇 싸움을 거는 것은 어느쪽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정곡을 지르는 글입니다. 한국 변리사 제도가 기득계층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지금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변리사 시스템으로 거듭 나길 기원합니다.
답글삭제지금은 Patent Attorney가 되셨겠군요. 한국의 변리사들은 소송 대리권이 없는, 그저 서류 업무만을 주로 하는 페이퍼워커들이라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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